[교육] 채찍질 하지 마라. 그리고 당근도 주지 마라.

당나귀를 길들일 때 당근과 채찍을 이용하여 길들인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적절히 활용하여 당나귀의 훈련을 극대화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적당한 당근과 채찍은 필요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과연 옳은 것일까?


당연하게 먹었던 당근

- 어렸을 때는 당근을 자주 먹게된다. 당연히 해야할 것을 했는데 당근을 준다. 당연히 해야 할 숙제, 당연히 해야 할 공부를 했을 뿐인데 우리는 당근을 받아먹었다. 그 당근이 참 맛있었기에 우리는 더 열심히 했다. 굉장하다. 당근 하나로 이렇게 내가 달라질수가. 당근은 우리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될 때 까지 당근을 먹으면서 자랐다.


채찍은 아프다

- 처음 맞는 채찍은 당황스럽다. 두번째는 아프다. 세번째는 더 아프다. 채찍을 맞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 기억이 너무 공포스럽기 때문에, 다시는 맞고싶지 않기에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라도 열심히 하니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 당근을 못먹는것 보다, 채찍을 맞는 것이 더 싫다. 가끔은 채찍을 들기만 해도 무섭다.


당근과 채찍이 없다

-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던 당근과 채찍이 사라졌다. 어른이 되고 나니 그 누구도 내게 당근을 주거나 채찍으로 때리지 않는다. 뭔가 조금 공허하다. 그것에 익숙해진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근이 없으니 열심히 할 이유도 없고, 채찍이 무서워 공포에 질린채 공부해야 할 일도 없어졌다.


그렇다. 부모나 선생은 대게 '당근과 채찍'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의도가 강제적이라면 좋지 않다. 일시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낳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담배와 같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피웠던 담배가 나중에는 없으면 더 불안해지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실제로 아이들을 상대로 연구한 결과가 있다. 퍼즐을 잘 맞추면 칭찬해주는 아이들과 퍼즐을 잘 맞추던 말던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던 아이들. 초반에는 칭찬을 받는 아이들이 퍼즐을 더 적극적으로 잘 풀어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퍼즐을 풀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반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아이들은 계속해서 퍼즐을 했고, 결국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적절한 당근과 채찍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없으면 자발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당근과 채찍이 정말로 필요한지 말이다.